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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mastin 나는 꼼수다 (3)

나는 꼼수다

분류없음 RSS Icon ATOM Icon 2011/10/28 15:01 mastin


재수시절, 내가 다니던 '재수학원 종합반'의 담임은 '정치/경제' 과목 담당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50대 남자였고, 간 때문이었을까, 낯빛이 어두웠다.

화이트닝 프로그램이 절실해 보였다기 보다는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자체가 세습 싸움에서 밀려난 서자,

'그러니까 난 찌질하지 않고 종니 고귀하거등?'의 포스.

10년 넘게 무기력과 찌질을 근원으로 하는 재수생들하고 지내면서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게 영혼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 했겠지만

뭐랄까, 뭔가 남다른 궁상맞음이 엿보였다.

어쨌든.

이 선생의 문제는 무엇보다 수업이 너무 재미 없었다는 데 있었다.

재수생들이 책 읽어주는 남자 만나러 학원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안 그래도 밖에 나가면 학생할인 받기도 애매한

재수생이란 신분 때문에 우울한 청춘들,

흑마법사의 주문 낭독 같은 그 선생의 수업을 들으면 더욱 우울해졌다.

하루는 한참동안 웅얼웅얼 혼잣말을 하다가

자뻐져자는 90% 이상의 학생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이 새끼들아! 내가 우습게 보여!"

굳이 말하자면 우습다기 보다는 찌질해 보였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너희들 영어 수학 시간에는 안 이러지? 내가 S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어!
  영어, 수학 선생들 그거 다 영어교육과, 수학교육과, 이런 하빠리-_- 학과 나온
  사람들이야! 이 나라 교육이 이 모냥 이 꼴이라 그렇지 내가 왕년에 ......
  이 나라 정치는 이게 문제고 ...... 경제는 지하경제가 다 움직이고 ......
  윗대가리 새끼들이 다 헤쳐먹고 ......"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고?"를 한 백번쯤 외칠 무렵, 선생은 다시 수업으로 돌아왔고

아이들은 다시 잠이 들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정치외교학과는 가지말자. 순도 백프로짜리 병신이 될 것 같아."




시간이 그 선생이 그렇게 찌질해보였던 이유가 뭐였을까 생각해보니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것 같았다.

사실 정치경제라면 영어나 수학보다 훨씬 재밌는 수업이 가능했을 거다.

게다가 학교도 아니고 학원이니 막말 못 할 것도 없지 않은가.

 "바둑이를 치는데 상대방이 만원을 뺏팅했어. 판돈이 9만원 됐어.
  콜 받을 거야? 왜? 그렇지!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을 고려해야지!"

뭐 이렇게 설명한다고 재수생들이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했을리도 없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몇개만 붙여서 말해줬어도

애들이 꿈나라로 엑소더스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그냥 혼자 웅얼거리는 수업만 하다가

재수생한테까지 멸시를 받던 강사로 기억되고 말았다.

요즘도 가끔 감자탕집에서 얼큰히 취한 채로

"내 말부터 들어봐! 중요한 건 뭐냐면!"이라고 진지하게 소리지르는 아저씨들을 보면

그 낯빛 어두웠던 선생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얼마 전 창당시점부터 후원했던 진보정당을 탈당했다.

그 처절하고 어두운 면모를 애정과 관심으로 보다듬다가는

내가 아무래도 생불이 될 것만 같았다.

이러다 죽어서 사리 나오면 인체의 신비전 같은 데 전시되겠지.

40년 가까이 붉은띠 두르고 몸에 신나 뿌리게 만드는 세상도 문제지만

여전히 그거 말고는 저항의 방법을 찾지 못 하는 (자칭) 지식인들도 지겨웠다.

 "일어나! 내가 지금 중요한 얘기를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일어나서 들어!"

아, 씨발 됐고. 그냥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적어 그런 건.




최근 들어 '나는 꼼수다' 열풍이 불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반갑다.

왜냐고?

재밌으니까. 게다가 졸라 신선해.

억눌린 감정을 '한(恨)'으로 풀지않고 '흥(興)'으로 풀어낸 정치향 가미 리얼 버라이어티.

이 방송은 좋든 싫든 당분간 양쪽의 합동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북으로 가서 방송하라는 수구 세력과 이념과 논리에 근거한 진보세력.

양쪽 모두 어떤 식으로 깔 지도 대충 짐작이 된다.

북으로 가라는 영역 확장 워너비 분들의 말에는 굳이 댓글을 달 필요가 없어보이니

대중을 선동하지말라는 진보 진영의 공격에 탱킹 한 번 해본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민들은 골방 선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굳이 위험한 선동질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바로 한 분.

조국과 민족 밖에 모르는 바보.

호연지기 그 자체이신 그 분 뿐이다.




2011/10/28 15:01 2011/10/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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