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2월.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는지 아닌지는 이미 30년이나 지나버린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고, 미아4동 예원 유치원에서는 재롱잔치가 열렸다.
재롱(을 보며 부모들이 즐기는)잔치를 준비하는 유치원 선생들은 "그 동안 유치원비를 낸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지요?"를 고객님들께 최대한 피력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이상한 옷을 갈아 입히며 춤 같은 것을 추게 했는데, 덕분에 내 사진 앨범에는 아직도 하얀색 쫄쫄이를 입은 꼬마 서지학, 검정색 반짝이를 입은 꼬마 서지학,색동 한복을 입은 꼬마 서지학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가들?" 하는 표정으로 사진기를 바라보고 있다.
이미 당시 미아4동에서는 6세 이하 어린이들이 다니던 유아원 원장이 유아원비를 들고 튀-_-어버린 피해사례가 있었기 때문에(내 기억 속에는 엄마 손을 잡고 유아원에 갔더니 경비 아저씨가 유아원이 이사-_-를 갔다고 했다.) 예원 유치원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책임지도를 더욱 강조해야 했던 시점. 알아요, 선생님들. 님들도 다 먹고 살려고 그랬던 거겠죠.
아무튼 부모들의 웃음과 박수 속에 재롱잔치는 성황리에 마감이 됐고, 그 순간 유치원 현관문을 열고 당시 유치원 원장 남편-_-과 너무도 닮은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을 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깜짝 놀랐다.
원장 남편 본인이거나 아니면 동일한 유전자를 나눠가진 친인척임이 분명해 보였던 그 산타는 미친듯이 쿨했던 건지 자신을 산타로 위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지 누가봐도 솜-_-이 분명한 수염에 숱이 짙은 눈썹을 그대로 드러내고 원생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선물을 나눠주었다. 싸구려 나일론 소재임이 분명해 보이던 빨간색 산타복은 따닥~ 거리며 정전기까지 일어났다. 뭐랄까. 너무 뻔뻔해서 감히 "어? 원장 선생님 남편이네?"라고 말을 못 붙일 정도의 분위기랄까.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12월이 되면서 유치원 선생들은 캐롤이라는 노래를 가르쳤고, 색종이를 접어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게 했고, 스케치북에 산타 할아버지를 그리라(그리고 수염은 '솜'을 풀로 붙여라)고 했기 때문에 7살짜리 꼬마들은 '아, 그런 늙은이가 있나보다' 하는 기대감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산타 할아버지가 아닌 셔터(맨) 아저씨라니.
자본시장의 구조를 알았더라면, "아 산타 할아버지가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며 선택과 집중을 하느라 유통과 배송을 하청업체에 위임했구나!"라고 인식을 했겠지만, 입학 전에 구구단을 다 외우는 것이 자랑이었던 7살짜리 꼬마에게 그런 지식인의 혜안이 있었을리가.
뭔지는 모르지만 불신의 기운이 온 몸을 휘감는 가운데 풀어 본 선물상자에는 며칠 전 엄마가 "우리 지학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받고 싶어?"라고 물어봤을 때 손가락으로 콕 찍어서 대답했던 장난감 오토바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음, 이건 뭐지. 혹시 도청인가.
집으로 돌아와서 장난감 오토바이를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첫번째, 씻기고 눕혀 놓기만 하면 하루에 스무시간도 자던 아이라 동네 아줌마들이 "이 집 애는 참 키우기 쉽겠어"라는 찬사를 늘어놓던 나였지만 올 해 적어도 몇 번은 울었다. 돌산에서 굴러 떨어져서 무릎이 다 까졌을 때는 분명히 울었다. 덤블링에서 재주 넘다가 밖으로 등부터 떨어졌을 때도 분명히 울었다. 이건 분명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 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 아닌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다니. 이거 원 송구스러워서.
두번째, 산타는 자기 전에 머리 맡에 걸어놓은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가는 할아버지다. 어디에서도 유치원에 나타나서 가나다 순으로 아이들을 호명해가며 선물을 준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러고보니, 내 양말은 물론이고 신축성이 좋은 아빠 양말이라고 해봐야 30cm도 안될 것 같은데 이 장난감 오토바이를 받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타이탄족 양말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아무튼 난 양말이 아닌 선물용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을 '산타 직송'으로 전달 받았다.
세번째, 굴뚝이다. 새마을운동과 산업화의 영향으로 유치원은 물론 우리집도 굴뚝이 없었던만큼, 산타가 굴뚝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창문이라도 넘어야지 현관문이라니. 게다가 유치원 현관에서 아저씨 '신사화'도 벗고 들어왔어. 물론 신사화를 벗겨낸 그 안에는 신사용 양말을 신고 있었고. 아아아, 원장 남편 아저씨. 그건 아니었다고 봐요.
미칠듯한 호기심에 엄마에게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이거 가지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알았대?"
엄마는 쿨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 엄마가 유치원에 사다 준 거야."
아.
"그럼 그 산타 할아버지 옷 입고 있던 아저씨가 혹시?"
"아. 그 아저씨는 원장 선생님 남편이야"
아.
이런 미칠듯한 쿨가이 부모님 덕에 "자고 일어났더니 선물이 놓여있었더라" 하는 서프라이즈 성탄절은 없었지만, 대신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신다?"하는 책임전가성 협박이나 으름장도 없었다. 더불어 중2때까지 '산타 할아버지 실존설'을 믿었던 친구 이모군-_-처럼 친구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하는 일도 없었으니 실보다 득이 더 컸다고 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성탄절은 이교도의 축일이니 그저 아침에 늘어지게 늦잠 자고 일어나서 보글보글 끓인 김치찌개로 나름 겨울의 휴일을 대신한 부모님이 원망스럽지는 않다.
성탄절은 그저 예수님 생신(아, 이 냥반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이 마침 많은 기업의 월급날인 25일이라 나름대로 축제를 즐기는 자본주의의 서민들에게 다행이라는 점과 창세기의 "창궐하라, 그리고 번식하라" 정신에 치중하여 '산타'를 '싼다'로 변형한 연인들이 우려스럽다는 점 정도. 뭐, 지들이 알아서 잘 싸겠지만.
나랑 별 상관이 없었고 앞으로도 별 상관이 없을 휴일이기는 하지만 오늘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니 문득 재롱잔치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파닥거리던 그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시절 좁은 골목길에 쌓이던 눈처럼 아득한 포근함이 떠올라버렸다. 아, 원래 눈 보면 군시절 제설작업만 생각났었는데.
늙으려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