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시나리오, 단편/블란더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3/09/02 mastin 블란더스#6 - 먹구름 - (14)
  2. 2003/08/01 mastin 블란더스#5 - 마음을 읽는 강아지 - (6)
  3. 2003/07/01 mastin 블란더스#4 - 해피엔딩 - (18)
  4. 2003/06/27 mastin 블란더스#3 - 기다림을 말하는 강아지 - (10)
  5. 2003/06/24 mastin 블란더스#2 - 술 권하는 강아지 - (13)
  6. 2003/06/22 mastin 블란더스#1 - 하늘에서 떨어진 강아지 - (7)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순간적인 기압의 차는 항상 나를 미치게 한다.


잡다한 기억들이 여기저기서 밀려들어 머리속이 마치 러시아워의 지하철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소나기가 오는 날은 늘 그렇다.


나무에 달라붙은 담쟁이 덩굴처럼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 온몸을 조여버릴 듯
덮쳐온다.






내가 만난 여자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정말 하나같이 '예쁘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 이름들은 내 혀끝에서 튕겨져 나올 때만 사랑스러운 이름일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그 아이는 정말 너무나 평범한 이름을 가졌었드랬다.






내가 유독 그 아이를 추억하는 이유는 단지 내 첫사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일하게 나에게 기쁨을 준 사람이라고 기억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건데 그것은 한참을 지나고나서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혹은 믿고 있는 그 사람이 나를 지치게 했던 쾌락이었는지,
나를 살아가게 하는 기쁨이었는지.







1년이었다.


그 아이를 잊는 시간은 그것으로 족했다.


사람을 잊는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죽을 것 같은 날들은 결국 살고싶다는 의지에 아주 쉽게 굴복하고 말았다.


가끔은 샤워하고 나와서 몸을 말릴 때, 전자렌지에 3분 요리를 넣고 돌아가는 것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그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누군가 내 입을 열고 빈 속에 차가운 콜라를 들이부어버리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곤했지만 그것조차 1년이 넘으니 꾸준하지는 않았다.



... 그럼. 난 과거보다는 현실을 사는 남자인걸.







뭐든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하던 나를 위해서였을까.


그 아이는 지지부진한 이별대신 사별을 택했다.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같이 보고 나오다가 그 아이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나도 저런 사랑 해보고 싶어"


  "쳇, 그럼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비극은 죽는게 아니야"

  
  "그럼 뭐야?"


  "무관심과 무뎌짐"


  "Ghost가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이 된 것부터 관객에 대한 무관심이야!"




난 괜히 심술을 냈다.


좋다.


뭐, 예전에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죽어버렸다면 꽤 분위기 있어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인생의 쓴맛을 좀 알고, 가슴 저 구석에 아련한 외로움 같은 것도 있어보이고
말이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하기에 딱 좋은 백그라운드다.


3인분어치의 쾌활함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해서 그 슬픔을 잊어버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으로 보이면 효과는 더욱 좋다.





  "이게 <정말 사랑일까 의심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랑은 비극이 된대"




그날따라 그 아이의 말이 내 머리 속에 매미울음처럼 퍼지고 있었다.


그 나이 또래보다 조금 조숙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유치했던 것인지
그 아이는 가끔 그런 말들을 조용한 어투로 얘기했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사랑은 결국 비극일 수 밖에 없는거야"




그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두워진 하늘에 흐릿하게 겹쳐졌다.


죽어버린지 몇년이 지났는지도 기억이 안나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날리가 없었다.




  "구름보고 있었어?"




어느새 블란더스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 따위 시커먼 먹구름을 보고 있을리가 없잖아"




난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울컥 화를 내버렸다.


'아니야, 난 이상한 생각 따위 하지 않았어'하고 항변하듯 말이다.




  "빛을 흡수한 물방울들의 옹기종기 모여있는거야"




내 마음을 읽었는지 블란더스는 대뜸 먹구름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래서 사실은 몽실몽실한 흰구름보다 더 따뜻한 구름이지"




따뜻한 구름.


그랬었나.




  "차가운 대지에 빗방울을 뿌리면서 사는 정이 많은 구름이야"



  "구름따위에 정 같은게 있을리가 ..."




난 무엇인가 반박하려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가오는 날 강아지에게 투정부리는 일 따위는 하고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흰구름은 그저 떠있지. 세상에 살고있는 흔하디 흔한 사람처럼."




블란더스는 내 행동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면서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나기가 오면 갑자기 <큰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이 올때가 있을거야"





블란더스의 말대로 정이 깊은 사람들은 왠지 심술맞아 보이고, 불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먹구름을 닮아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비유가 아무리 절묘하다 하더라도, 난 비가 싫었다.


비오는 날은 커피에 빠진 크래커가 된 느낌이 들어버리니까.


난 청량하고 차가운 하얀 구름처럼 아무에게도 비를 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큰 선물"




블란더스가 내게 다시 한번 각인시키듯 중얼거렸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같이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




난 그저 빈정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블란더스는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잘 봐"




그때 블란더스가 한 말은 비가 내리는 날 나를 옭아매는 기억의 일부가
되어있다.





  "난 여우가 아니라 비를 좋아하는 강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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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2 23:18 2003/09/0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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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블란더스는 꽤 귀여운 몸짓으로 눈을 비비고나서 사탕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졌으면 바오밥나무를 먹는 양이라도 그려달라
   그래야 되는거 아닌가'




내가 속으로 조금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자, 블란더스는 사탕을 웅얼
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별에는 바오밥나무가 없는걸?"




순간적으로 난 가시에 손가락을 찔린 듯 뜨끔했다.



  "이거 더듬이거든"



블란더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끝이 동그란 귀를 흔들었다.




  "어 ... 그러니까 그거 개미같은 거에 붙어있는 그런건가?"




말을 하고보니 블란더스가 개미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탕이나 설탕물에 많이 달려드는거 하며 ... 날개가 달린 숫캐미정도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챘는지 블란더스가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눈이 앞으로 달려있는 생명체는 자기자신을 보지 못하거든"


  "음?"


  "뭐랄까 ... 개미의 더듬이랑은 조금 다른거야. 스스로를 보는데 쓰는거니까"


  "글쎄 ... 어려운데?"


  "알게될 날이 올거야"



  
블란더스는 입맛을 다시며 창가로 다가가 기지개를 켰다.


이것저것 의문투성이인 강아지였다.



  "궁금한게 있어"



난 용기를 내어 그를 처음 만날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왜 지구에 떨어지기를 반복하는거야?"


  "음 ... 별이 되려고"



블란더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큰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너무나 이상한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야지 싶었다.



  "추락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 내 눈속에 있는 별이 점점 커져.
   그게 다 커지면 별이 되는거지"


  "별같은거 되서 뭐하게? 그냥 그거 돌덩어리잖아"



내 질문이 조금 한심스러웠는지 블란더스는 한숨을 조그맣게 내쉬었다.




  "지구인 중에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라는 걸 깨닫는 사람이
   드믈어. 그래서 생일선물에는 고마워하면서도 삶 자체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거 같아."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그의 표정이 웬지 슬퍼보였다.


당시 난 그저 세상에는 37처럼 어느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놈도 있고,
바퀴벌레처럼 지구상에 2억5천만년 동안 조금의 진화도 없이 오로지
'존재'만 하는 놈도 있으니까 별이 되려는 강아지 하나 정도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했다.



난 참 어렸고 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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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1 21:49 2003/08/0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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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적인 나체주의자라 할 수 있다.


자기를 들어내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추악한 자기를,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자기를 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들어내기를 부끄러워하거나 그 방법이 서투른 사람은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하는 것이다.


블란더스가 지구에 내려와 겪었던 이야기를 말하려고 하는 지금, 난 과연
그의 이야기를 잘 엮어낼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          *          *          *          *




블란더스가 처음으로 지구에 떨어져 만난 사람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차마 수업을 들어갈 수 없는, 내일보다는 벅찬 오늘이 더 소중한
그런 평범한 인물이었다.


블란더스가 그의 집에 추락했을 때, 그는 3년간 사귀어 온 여자와 결별을 다짐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레임이나 긴장감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야."


  "으흠?"




그의 투정에 졸고 있던 블란더스가 반응했다.



  
  "더 좋은 여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지도 오래고"


  "으흠?"




블란더스는 여전히 한쪽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잔소리도 지겹고,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 거리는 것도 지겨워"


  "그거 참 지겨운 일이지"




블란더스는 남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런건 사랑이 아니야. 헤어져야겠어."




블란더스의 응원에 힘을 얻은 남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짐했다.


그러자 블란더스는 그를 향해 한참동안 큰 눈을 끔뻑거렸다.




  "사람이 조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자신하고 있는 만큼
   그렇게 뛰어나지는 못한 것 같거든?"




블란더스는 특유의 비유법으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음 .. 뭐랄까. 새가 알에서 태어나서 처음 본 물체를 엄마라고 생각하는거
   말이야. 사람들은 그걸 보고 새가 참 멍청한 동물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남자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



  "뭐가?"



  "인간들 역시 가장 좋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좋은 맨 처음의
   사람과 사랑을 하는거 같아"



  "........."



남자는 블란더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닐가 생각해.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그 사람을 가장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잊고 싶은 기억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게 아닐까 하고."



  "음"




남자는 짧게 신음했다.




  "지금 그 사람이 너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동안
   네가 그 사람과의 시간을 잘 못 사용했다는 뜻이겠지"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결국 난 이제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



남자는 우울한 목소리로 블란더스에게 소리쳤다.




  "알고 있어. 난 다만 그 책임이 너에게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거야"




블란더스는 귀를 쫑긋거리며 얘기했다.




     *          *          *          *          *          *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보자 블란더스는 크게 하품을 하고는 매우 졸린 듯
대답했다




  "헤어졌지"


  "에게?"




그의 대답에 난 조금 실망스러웠다.




  "뭐야, 그 시시하다는 말투는?"


  "지구에 와서 처음 와서 한 일이 헤어지는 걸 그냥 바라본 거라는거야?"


  "날 램프의 요정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지?"




블란더스는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무책임한 열정이 순수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나이였으니까.
   앞으로 그 열정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자기 몫이겠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이었으면 더 보람있지 않았겠어?"




난 아쉬워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언제나 따뜻한 햇볕만 바란다면 그 사람은 사막이 되어버려"



  "........."



  "비가 내릴 시기였던거야"





블란더스는 말끝을 흐리면서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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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20:36 2003/07/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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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더스#3  - 기다림을 말하는 강아지 -




블란더스를 만나기 전까지 '천이궤도(Transfer orbit)'라는 말은 들어본적도 없었다.


문과생이 그런걸 알리가 없잖아.


지구의 적도면상을 정동쪽 방향으로 나가는 원궤도를 '정지궤도'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는 것만도 기특한 터였다.


내가 정지궤도를 기억해낸 이유는 이 궤도 내에서는 '위성의 공전주기와 지구의
자전주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지표에서 보면 위성은 적도 상공의 한 지점에 머물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는 말에 굉장히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웬지 '인공위성 사기단'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말이다.


블란더스를 떠나보내고 뒤져 본 백과사전에 따르면 정지궤도와 같은 궤도고도가 높은
에 위성을 발사할 때, 일단 저고도의 원 궤도에 올려놓은 다음, 정지 궤도로 유도하기
위한 중간 위치의 타원 궤도에 올려서 거기서부터 정지 궤도로 투입하는 방법이
일반적인데, 이와 같이 고도가 다른 제1궤도로부터 제2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중간의
궤도를 '천이궤도(Transfer orbit)'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블란더스의 말에 따르자면 그는 지구로 추락하기 위해 이 타워형의 천이궤도를 아무런
동력없이 순전히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라 관성만으로 돌며 대기하다가 태양과 달의 인력이
강해져서 그 인력이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겨 해수면이 높아지는 날을 택해 추락했다.


'지구-달-태양' 혹은 '태양-달-지구'와 같은 일직선 정렬이 되는 경우, 결국 추락기회는
한달에 2번, 그러니까 1년에 24번의 기회만이 주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날, 블란더스는 태양과 달을 뒤로한 채 그들의 인력에 적당히 의존하며 지구의
강한 중력을 피해 내 방안으로 추락했다.



  "대기권을 통과할 때 꽤 뜨끈뜨끈했지, 하하"



웬지 풍선이나 이동하는 철새들을 타고 내려왔다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았지만
그의 해박한 과학적 지식에 난 고개만 끄덕거릴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런데서 기다리고 있는거지?"


  "왜냐니?"


  "그런데서 돌아다니면 인공위성이랑 부딪힐 수도 있고 말이야."


  "으흠?"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랑 부딪히면 아프지 않을까?"

  
  "으하하하하하~"



블란더스는 내 질문이 바보같다는 듯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는 웃음을 멈추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다리는 건 당연하잖아. 뭐든지 기다려야 얻을 수 있으니까"


  "뭘 얻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많은 걸 얻지. 설레임이나, 상상들"


  "글쎄 ..."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그럴까.



  "기린이란 동물은 하루에 5분 정도 자거든? 기린들은 그 5분의 휴식을 위해서
   하루종일 사자한테 쫓겨다니지."



블란더스는 지구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생물학의 영역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가끔 행복할 때 아주 고마워할 수 있다는거야."




난 순간적으로 '참 재미없는 소리를 하는 강아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블란더스는 귀를 쫑긋거리며 말했다.




  "너도 다른 지구인들처럼 이런 얘기는 재미없어하는구나"




내가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블란더스는 나를 향해 살짝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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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7 21:17 2003/06/2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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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더스#2  - 술 권하는 강아지 -



트렌디 드라마에서 예찬해 마지않는 푸르른 젊음, 이십대 초반의 삶은 막상 닥치고
나니 배신감에 은근히 부아가 끓어오르는 나이로 변질되고 말았다.



"지금이 너희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대학만 가라.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수년간 세뇌를 당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저리도 말도
안되는 소리에 10년 넘게 세뇌를 당하면서 살아왔는지 조금은 우습다.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디 있겠어.


저 소리를 밥먹듯이 한 고3 담임이 '대학진학률 최고반 담임'으로 선정되어 해외여행
티켓을 거머쥔 것을 알게된 후로부터 내 인생은 복잡해졌던 것 같다.


사막을 헤메다가 '저 언덕만 넘어가면 오아시스가 있어'라고 말하는 안내자를 따라
언덕을 넘었더니 안내자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우헤헤~ 지금까지 모두 뻥이었지롱~'
하며 도망가버린 셈이다.


사람들은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다.


나 역시 사회 부적응의 결과로 대학을 잠시 쉬며 글을 쓰고 있었다.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월요일 아침 운동장 조회에 나가는 것만큼 싫었던 시절이었다.


산아래 작은 옥탑방을 얻어 글을 쓰기 시작한지 반년째, 난 그믐달만큼이나 심심했다.


적어도 트레이닝 복을 헤치고 날개가 달린 빨간 강아지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몇일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뭔가 신선한 충격을 바라고는 있었지만, 이런 또또복권
연속당첨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경험을 하리라고는 생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



순간적으로 난 얼음이 되었다.


말하는 강아지를 처음 접하는 순간의 느낌은 그런 것이다.



  "응? ... 으응 ..."


  "굳어있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난지 채 10분도 안되는 시간, 난 순식간에 상당히 웃기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 글쎄 ... 뭐랄까 강아지하고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라 ... "



더듬이 같은 귀와 별사탕 같은 눈을 가진 강아지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술 마셔봤어?"


  "어? ... 응 ..."


  "첫잔에는 잘 안 취하지?"


  "응"


  "마시다보면 은근히 취하고 말이야."


  "응"


  "나랑도 그렇게 될거야. 그냥 나한테 술을 권한다고 생각해."




강아지가 다독거리는 말투로 나를 위로하며 씨익~ 웃었다.




  "이거 먹어도 돼?"



내가 잠시 움찔하는 순간 강아지는 어느새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사탕통에 코를
가져다대고 있었다.



  "어 ... 어 ..."



말이 끝나자 무섭게 강아지는 사탕을 꺼내어 입에 물었다.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내내 이것만 생각했거든"



강아지는 사탕을 입에 가득 물고 술을 권하듯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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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4 23:37 2003/06/2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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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되짚어보자면, 산아래 옥탑방에 방을 얻은 것부터 실수였다.


산이 집근처에 있기에 그저 공기가 맑겠거니 하고 생각했지, 아침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산위로 뛰어 올라가리라고는 다먹고 남은 과자봉지안의
과자부스러기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침마다 우유 한잔 마시고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어린 녀석, 아직 네가 모르는 세상이 많아'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아침마다 산 위에서 사람들이 질러대는 고함소리는 언제인가부터 자명종
시계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일어났으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라"



그날도 역시 나는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고 산 중턱을 향해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말을 마법사의 주문처럼 중얼거리다 보면 수술 후 환자가 최면에서 서서히
깨어나듯 반쯤 감겨있던 눈이 서서히 떠지면서 산중턱에 자리잡은 오래되고 못생긴
나무가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5분 정도 그 나무와 같은 자세로 창틀을 붙잡고 광합성을 하다보면 내 눈에 모래를
퍼부어 넣던 잠의 요정도 도망가기 마련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따라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잠의 요정은 내 눈에서
좀처럼 철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꽤 오랜 시간동안 창문을 닦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 뿌옇고 지저분해 보였던 탓이었다.



  '햇살도 지저분하게 내려오고 있는거 아닌가?'



종종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귀찮아서 닦지를 않았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커텐을 수건삼아 창을 슥슥~ 닦아놓으니
창밖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덤까지 똑똑히 보인다.


슬프게도 월세가 저렴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 목을 크게 한바퀴 돌리자 하늘 높이 솔개가 날개를 쫙 벌린채로
맴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흐아아암~ 이 조그만 언덕에 먹을만한 것이 있을런지 몰라"



하품을 하면서 크게 기지개를 펴려던 순간이었다.


솔개 옆으로 무엇인가가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뭘까?'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문득 그 물체가 내 방 창문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얼마전 솔개에게 쫓기던 참새가 방안까지
날아들어와 난리를 쳤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개도 먹고 살아야지, 참새야"



느릿느릿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이미 그 물체는 놀라운 정도로 빠른 속도로 창문을
통과해 방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착륙하고 있었다.




  쿠당탕~!!!



괴물체는 책상 의자를 방구석까지 밀어 넘어뜨리며 정지했다.


한참동안 의자에 걸려 있던 내 트레이닝복에 말려 허우적대던 그 물체는 간신히
머리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아이구~ 머리야!"




블란더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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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16:10 2003/06/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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