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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9/30 mastin 나는 팬더 스라파 #1 - 팬더가 되다 - (8)

진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이상일 경우 정향진화는 생명체에 있어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일랜드큰사슴'인데, 이 녀석들은 갈수록 커지고 무거워지는 뿔로 인해
오히려 생존과 개체의 보존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갑자기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가기
시작한 것은, 얼핏봐도 사는데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코끼리의 상아가 점점 줄어들
무렵부터였다.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의 추측성 발언들이 연일 일간지를
장식했고, 기다렸다는 듯 언론사들은 대동단결하여 신문구독료를 인상 하였으며, 세계각국의
내노라 하는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에 엄청난 액수를 투자함에 따라 제약주들은 연일 주식
시장에서 상한가를 이어갔다.


이 범세계적 재앙의 이유가 곧 지구를 달과 지구사이 거리의 20배 거리로 스쳐지나가게 될
소행성의 영향 때문이라는 의견과,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자들의 최후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지금가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죽어갔는지를 호소하는 선진국
종교 지도자들의 주장이 신 자본주의 진화론자들의 의견을 옹호했던 바, 여론은 점점 후자로
모아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노동을 했고, 실업자들이 단체로 자살을
해버리는 통에 장의사들의 소득세 납부액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정부는 세금이 남아돌아 즐거웠고, 사업가는 회사가 잘 돌아가 즐거웠고, 서민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즐거웠으며, 죽어버린 사람들의 기분은 알 수 없으니 모든게 예전보다 나아진 셈이다.


소행성론을 주장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행성 센터는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의 공격으로
붙타버렸고, 신자본주의 진화론자들은 분기별로 자신이 쓴 책들을 수정보완판으로 편찬하여
판매했다.




팬더가 등장한 것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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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무를 하기 위해 출근한 일요일.


나는 회사 근처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삼선짬뽕밥에 왜 죽순이 들어가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팬더가 되었다.


최초 발견자인 연변 출신 종업원 아줌마는 불법 체류자 신분인 듯 신고를 꺼려했고
결국 화교출신 주방장이 팬더 관리국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과천종합청사로 오셔서 팬더 등록을 하시랍니다.>



주방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고, 난 조금 쭈삣거리며 중국집에서 나와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팬더 관리국 사무실을 찾아갔다.



<서울지역 내일의 적정 예상 근무량은 오전 3시간 51분, 오후 7시간 20분이며
  곳에 따라 3시간 정도의 추가 근무가 적당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주의깊게 시청했을만한 <내일의 일>이 지하철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이미 팬더가 되어버린 나에게 그런 정보는 더이상 의미기 없었다.


놀랍게도 난 스키브 바라캇의 음악이 언제나 BGM으로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종합청사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의경 한명이 나를 보자마자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팬더관리국 찾아오셨습니까?>



그리고 그는 종합청사 지하5층 팬더관리국 사무실까지 나를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래, 경찰은 우리의 친구. 그러니까 의경은 친구 동생 정도.


팬더에 관한 논문으로 가득 찬 그 방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7급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미간을 찡그리며 앉아 있었다



<에이즈감염자 한 명이 1,000명의 정상인과 콘돔을 착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을 때
  그중 약 4~6명이 에이즈에 감염이 됩니다>



7급 공무원 정도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내게 말했다.



<대략 0.5%군요>


<대략 0.5%죠>



남자는 한쪽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비슷합니다. 비슷하게 죽순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사람이 팬더가 될 확률은.>


<대략 0.5%군요>


<대략 0.5%죠>


<공무원이 일요일날 이런 일로 출근해야 할 확률보다 크지요.>


<네, 그렇군요>



그 공무원은 갑작스러운 일요일 출근으로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다.



<아시겠지만 에이즈 보균자가 감염여부를 확인해서 죽기까지는 평균 15년 정도가 걸리지요.
  팬더의 수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더도 에이즈 환자와 비슷하게 면역결핍으로 죽나요?>


<사망유형은 비슷하지만, 에 또, 뭐랄까,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들의 주된 사망원인은
  면역결핍이 아닙니다.>


<그럼?>


<외로움이나 사회적 편견, 그런 것이겠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부분 몇년 못 버티고 자살하거든요.>




공무원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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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30 19:54 2005/09/3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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